2017/09/13 15:17

픽션에서 구조와 자의식에 대한 단상

구조와 자의식에 대해 끄적끄적.

픽션에 있어서, 어떤 요구 혹은 욕망에 의해 서사구조는 만들어진다. 이를 테면, 사람들은 '사법행정 이상의 어떠한 눈에 보이는 악의 처벌'을 바라기 때문에 '정당성과 힘을 지닌 영웅이 악당들을 처벌한다'같은 히어로물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서사구조는 시간이 지나 반복되면서, 점점 정형화된다. 이러한 정형화 위에서 때때로 욕망과는 독립적인, 자의식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태어난다. 이는 작품을 만들어낸, 창작자의 자의식이 아니다. 구조 그 자체가 갖는 자의식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히어로의 물의 비유를 계속해보자(단, 이는 어디가지나 비유이며 실제 히어로 코믹스가 걸어온 역사는 아니다). 히어로물의 반복적 서사구조가 정형화되면, 자신이 하는 일에 자각적인 히어로가 등장하게 된다. 말하자면 히어로는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 타의적으로 행동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경단으로써 자의식"과 나름의 동기를 갖고 행동하게 되는 셈이다. 이 "자경단으로써 자의식"은 종종 히어로와 히어로물의 존재의의 - 사적제재란 행위나 그러한 욕망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이러한 사적제재에 종지부를 찍어 안티 클라이막스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물론 나는 히어로 물과 같은 연재물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픽션일반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며, 원한다면 반전테마를 지닌 전쟁영화, 혹은 다회차 플레이를 전제로 하는 게임 시나리오 따위로 이를 이해하려 해도 좋다. 요는 서사구조 자신의 기능이나 이를 지탱하는 욕망을 비판하는 메타적인 접근을 '자의식' 혹은 '자의식에 의한 비판'이라고 부르잔 것이다.

어쨌든, 구조에 의해 태어난 부산물이니만큼, 자의식이 구조를 비판한다고 해서 구조가 약화된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자의식에 의한 비판은 서사구조가 기능하여 독자들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일(히어로 물에서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 전쟁영화에서는 전투체험 등)을 방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텍스트는 어찌되었든 수용자와의 협력에 의해 의미를 얻으며, 수용자는 자신의 뜻대로 의미를 선별해낼 수 있다. 나아가, 종종 자의식은 바로 그 비판을 통해 구조와의 공범관계를 이루기도 한다. 자의식은 구조를 비판하는 위치에 서되, 바로 그 구조비판을 면죄부로 삼아 구조가 재생산되는 것을 막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의 재생산은, 역시 제일 처음에 말한 욕망에 의거한다. 욕망이 충분히 단단하다면 위와 같이 자의식에 의한 비판은 충분히 크리티컬하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욕망에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하는 테크놀러지나 미디어의 변화, 혹은 욕망 그 자체를 변화시키는 사회나 역사의 변화에 의해서 구조가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 자의식이 구조에 아무런 영향도 못 끼치는가하면 그것은 아니다. 구조에 한 번 부여된 자의식은, 고전이나 명작과 같이 이정표로써 기억되고 공유되어, 이후 재생산될 작품들이나 그 수용자들로 하여금 이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즉, 구조의 재생산 그 자체가 아니라 방향성에 그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겠다.

이 글조각은 (귀납적이든 연역적이든) 그 어떤 검증도 거치지 않은 인상론(='썰')이며, 나아가 '자의식<=서사구조<=욕망<=사회'라는 다단모형이 실제로 가능한가('텍스트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란 질문 앞에서 무력해진다. (적어도, 그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아직 갖고 있진 않다) 그러나, 안티 스펙터클과 같은 수법을 이용한 일군의 '메타-' 작품들에 대해 생각하는 단초로써 활용해보려고 한다. 애초에 이를 검증하려면 이러한 지면으로는 부족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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