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15 17:15

언차티드 4 : 이야기의 만연 과대망상 아티클

"게이머들이 잃을 것은 오로지 컨트롤러를 옥죄는 이야기뿐이요, 얻을 것은 자유로운 유희의 낙원이다! 만국의 게이머여 단결하라!"
-넷실러, 2016/05/15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말해둘 게 있습니다. 언차티드 4는 분명 재밌고, 잘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이는 자체 완성도도 그렇고, 전작에 비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짚어 두고 가야겠습니다.


언차티드의 게임 요소는 크게 플랫포밍, 퍼즐, 액션으로 나뉠 수 있는데 이 세 부분 전부 전작에 비해 발전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플랫포밍에는 3에서 생긴 비탈길에 더해서 갈고리가 생기면서 나름의 긴장감이 생겨났죠. 대못의 도입으로 단순히 점프 버튼만 누르면 될 것이 아니라, 다음 발판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할 여지를 주었습니다. 제가 1회차만 끝내서 잘은 모르겠지만, 제 기억이 맞다면 플랫포밍 파트에서도 이 세가지 요소들을 자신이 편한대로 조합해서 이동할 수 있는 (미약한) 자유도가 추가되었습니다.


퍼즐도 적당히 흥미로운 정도로, 비교하자면 툼레이더보다 살짝 쉬운 정도입니다. 엄청나게 어려워서 골을 썩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쉬워서 ‘이게 뭐야’하고 끝나지도 않습니다. 액션은 정말 크게 개선되었는데, 구색맞추기였던 잠입 파트가 좀 더 그럴싸해졌고, 이에 따라 슈팅의 경우에도 다양한 환경들을 이용하여 종횡무진 날고 뛰며 사울 수 있습니다. 플랫포밍의 갈고리를 사용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보면 게임의 배경인 ‘해적’이 된 기분도 맛볼 수 있을 정도죠.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저는 언차티드 4가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좋은 놀이 장소들을 이야기라는 요소가 갉아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마인크래프트나 슈퍼미트보이 같은 인디 게임들이 등장하여, 게임이 이야기라는 요소에 열광하는 건 이미 뒤쳐진 경향이란 점에서 언차티드 4는 더욱 불만스럽습니다.


먼저 ‘이야기’와 ‘영화’의 차이를 말해둬야 할 것 같습니다. 언차티드 시리즈는 이른바 시네마틱 게임이고, 저 역시도 그러한 요소가 마냥 싫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부분이 가장 빛나는 건 사실 퍼즐 파트입니다. 언차티드 4에서는 특히 액션보다 퍼즐과 플랫포밍의 요소가 늘었는데요, 이런 구성은 인디아나 존스나 원숭이 섬의 비밀 같은 ‘정통 어드벤쳐’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다만, 그렇기에 퍼즐을 풀다보면 종종 ‘내가 이 비싼 그래픽으로 이걸 해야 하나?’ 같은 생각이 들게 하기 마련입니다. 그걸 보완시켜 줄 수 있는 요소들이 바로 시네마틱한 컷씬들입니다. 퍼즐을 완성시켰을 때 거대한 장치들이 동작하거나 문이 장엄하게 열리는 모습은 게이머들에게 ‘보수’가 되어 큰 희열을 느끼게 해주지요. 게임 메커니즘만 따지면 같은 행동인데도, 종이를 돌려서 퍼즐을 맞추는 것과 이러한 거대한 기계장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확실히 효과가 다릅니다.


따라서 ‘영화같은’ 게임이라고 해도, 그건 꼭 좋은 ‘이야기’를 탑재한 것이라고 볼 순 없습니다. 시네마틱 게임들이 주로 비난받았던 점이 사실 이 부분인데요, ‘시네마’라고 해도 딱히 깊이 있는 내용을 담았다기보다는 헐리우드의 액션 영화들을 흉내내서 요란한 장면들만 자꾸 넣어놨다는 식의 비판이죠. 콜 오브 듀티 시리즈가 좋은 예일 것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우리가 시네마틱 게임하면 떠올리는 것은 마이클 베이이지 코엔 형제가 아니란 얘기죠.


여하간, 시네마틱 게임들이 흉내냈던 것은 사실 ‘이야기’로써 영화가 아니라 더 예전부터 존재했던 ‘요지경’ 이나 ‘스펙터클’로써, 그러니까 눈요기로써 영화입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서 (게임 플레이 요소를 많이 해치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불만은 없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러한 눈요기가 보수로 주어질 때 게임에서 더 큰 쾌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존의 언차티드 시리즈에서는 이러한 불만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번 언차티드 4가 문제가 되는 부분은 눈요기로써 영화적인 부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야기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번 작품의 이야기 자체는 꽤 깔끔하게 짜여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호불호는 있지만 그건 나중에).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것이 게임이란 형식과 어울리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입니다. 최종편이라는 부담감이 심했는지 아니면 각본에서 의욕이 넘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언차티드 4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비대해서 (위에서 말했듯이) 놀이 공간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이야기란, 정확히 말하면 서사란, 인과관계와 시간에 흐름에 따라 이루어지는 행동의 연속입니다. 따라서 그 전의 복선들, 어떤 원인들을 제대로 비춰주지 않으면 나중에 일어나게 될 결과로써 사건들이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번 작품의 이야기는 기존 시리즈와 독립된 부분이 있기에 많은 준비들이 필요합니다. 여태까지 등장하지 않던 네이선 드레이크의 형 ‘새뮤엘 드레이크’를 등장시키기 때문에 이 새뮤엘 드레이크와 얽힌 과거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한 번 손을 놓았던 도둑질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네이선 드레이크의 심리묘사도 그렇습니다. 가슴 벅차는 모험과 눈이 휘둥그래해지는 보물이란 비일상을 굳이 두고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를 위해서는, 반드시 일상 파트의 묘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과거 이야기에서 파생되는, (언차 3에서 다뤄졌던) ‘자기 증명’이라는 문제에는 형제를 비추는 또다른 거울인 악당 레이프와의 이야기도 필요합니다.


언차티드 2나 3가 이러한 것들을 준비하는 대신에 눈요기로 떼우는 안이한 각본이었다면, 이번 언차티드 4는 철저하게 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실성은 오히려 게임이란 매체에서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저는 이 게임의 인트로 첫 부분에서 액션 파트를 조금 즐긴 뒤에, 탈옥 파트인 6장까지 제가 원하는대로 플레이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파트는 어떤 제한을 걸어두고 있었죠. 예를 들어 어떤 부분은 액션이 없이 플랫포밍만 있다거나, 어떤 부분은 슈팅만 있다거나 심지어 어떤 부분은 그런 것도 없이 사물과 세모버튼을 눌러 네이선의 독백을 듣는 파트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스코틀랜드인 8장에 가서야 겨우 제게 모든 요소를 해금시켜줍니다. (경매장인 7장은 살짝 독특한 파트이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고 봅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튜토리얼 파트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 지나치게 길어요. 7장인 경매장 파트까지 포함하면 3시간이 넘도록 게이머에게 진짜 놀이 공간을 열어주지 않는 겁니다. 게다가 그 중간에 있는 일상 파트, 네이선의 인양 작업이나 엘레나와의 하루를 보여주는 것은 너무나 지루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튜토리얼 형식으로 ‘차근차근’ 게임 요소들을 풀어주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감옥 파트에서 플랫포밍과 맨손전투를 시도했는데, 그 다음에 일상파트가 이뤄지고 플레이어는 (엘레나와의 교감을 위해) 밴디쿳이나 하고 있어야 합니다. 중간중간에 대화를 위해 걷기 파트가 들어가 있는 건 기본이죠. 게다가 게임 후반부에 등장하는 네이선과 세뮤엘의 과거 회상 파트는 라오어 DLC를 방불케하는 구성으로, 일부 사물들과 인터랙티브를 통해 대화를 듣는 정도가 스테이지의 전부인데 꽤 깁니다. 이 게임은, 저로 하여금 ‘컨트롤러의 모든 버튼을 구사해서 도전적인 문제를 해쳐나가기’를 중간중간 빈번하게 방해합니다. 언차티드 4는 액션 ‘어드벤쳐’ 게임인데도 모험과 도전에서 오는 플레이어의 성취감 대신에,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게임 컷씬의 영상 연출, 절제된 배경음악 사용, 위에서 언급한 회상 파트의 스테이지 구성 등등을 생각해보면, 역시 라스트 오브 어스의 경험이 크게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잘 짜여진 스토리라 할지라도 액션 ‘어드벤쳐’ 게임인 언차티드 4에 있어서 좋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모험의 두근두근함과 그것을 내가 도전하여 내가 성취한다는 체험을 게임에서 자꾸만 잘라먹는 것은 그다지 좋지 못한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게임에 이야기가 완전히 배제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이야기는 감정이입을 돕고, 게임 메커니즘을 더 의미있게 만듭니다. 같은 메커니즘의 게임을 플레이하더라도 ‘기어즈 오브 워’를 플레이하는 것과 ‘스펙옵스 : 더 라인’을 플레이하는 것은 분명 다른 체험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임에서 이야기가 절대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게임의 부속품이지 지배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상으로만 따지면 (물론 그보다 훨씬 낫지만) 저에게 언차티드 4는 메탈기어 솔리드 4를 떠올리게 합니다. 좋은 놀이 공간을 준비해두고도, 이야기의 비중 때문에 그 부분이 갉아먹혀있다는 부분에서 말입니다. 완전히 헛된 과장은 아닐 거에요. 컷씬 뿐 아니라 걸어가며 대화하는 장면이나 회상 씬 같은 유사 컷씬 장면들까지 포함한다면, 메탈기어 솔리드 4와 맞먹을 정도로 게임과 이야기 사이에서 이야기의 비율이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중시하는 건, 게임이란 매체에게 있어서 지나치게 낡은 것이 아닐까요. 언차티드란 경쾌한 모험물에서 과연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만연할 필요가 있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게임을 1회차는 재미있게 끝내지만, 그 이상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제 컨트롤러로부터 자유를 빼앗는 몇몇 파트들을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거든요. 그이제 게임은 스스로가 게임으로써 제공하는 체험에 자신감을 갖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더 좋은 게임으로 발전할 수 있겠지요.


관련하여 읽어보면 좋을 글들

토킹헤드 中 "영화란 이야기" : http://noobcoela.egloos.com/2581255
게임의 예술 식민지화에 반대하여 : http://noobcoela.egloos.com/2462495
포터 H 에벗, <서사학강의-이야기에 대한 모든 것>, 문학과 지성사
제스퍼 주울, <하프 리얼 - 가상 세계와 실제 규칙 사이에 존재하는 비디오게임>(의 4장 가상세계), 비즈앤비즈 


추신 : 이건 위에서 말한 호불호의 문제를 조금만 얘기해 볼게요. 이건 아마 반대할 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고 거기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ㅋㅋ 

메탈기어 솔리드 4의 테마보다 언차티드 4의 테마가 좋은지는 좀 의문스럽습니다. 물론 각본의 구성이나 스토리텔링은 언차티드 4가 훨씬 좋습니다. 하지만, "게임 시리즈의 최종편"이라는 것, 그러니까 "이제는 놀이 시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라는 것을 다루는 면에 있어서 언차티드 4가 메탈기어 솔리드 4만큼 좋은가 하면 글쎄올시다, 란 생각이 듭니다.

메탈기어 솔리드 4가 게임을 계속하게 만드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에 의해 관리되는 욕망이라는, 좀 더 환경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면, 언차티드 4의 경우에는 이 게임을 지속시키게 하는 욕망, 그러니까 좀 더 개인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시나리오란 즉 게임의 메커니즘을 의미화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오히려 이것은 지나치게 안전한 선택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어쩌면 잘 만들어진(웰-메이드) 이야기의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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