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16 02:28

‘구하고 싶다’는 마음 과대망상 에세이

‘구하고 싶다’는 마음

언젠가 나르키소스란 비주얼 노블을 플레이한 적 있다. 그 때 한창 게임방송을 하던 때였는데, 이 작품은 여주인공 외엔 보이스가 없기 때문에 텍스트도 읽고 거기에 즉흥으로 추임새도 넣고 코멘트도 달고 그랬다. 그 때 마이크로 그런 소리를 했었다.


“야, 진짜 부끄럽지도 않냐? 너무하잖아 ㅋㅋㅋㅋ 세상에 이런 (형편 좋은) 여자애가 어딨어. 귀엽고 어리게 생겼는데 연상이고, 차가워보이지만 시한부 인생이라고? 그리고 주인공은 같이 시한부 인생이고? 억ㅋㅋㅋㅋ ”


뭐, 솔직한 심정이고 별로 이 발언을 철회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렇게 잘난 사람은 아니란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조금 다른 소리이지만 — 그런 비주얼 노블이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야겜을 플레이하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야겜을 하는 이유는 여자애를 구하고 싶단 마음이 있으니까” 하는 거라고. 머리가 이상한 여자애를 구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플레이의 동인(動因)이 된다고나 할까. 그건 분명 여성혐오적이지만 어떤 의미에선 소년스러운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미숙하단 점에 결국은 포르노로 이어진다는 (나쁜) 점까지 포함해서.


나는, 그런 걸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된 경위를 설명하면 길고, 아마 흥분에 찬 어투로 (현실에서는 소리를 높여가며) 욕설을 내뱉겠지만 그런 건 생략한다. 다만 사람이 어느 이상 폭력을 당하다보면 머리로 이해를 해도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공포에 적응을 해버린달까. 그리고 뭣보다, 나는 ‘여성’이라던가 ‘여자애’라던가, 그런 것 이전에 타인에 대한 관심이 극도로 옅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있을 때 가장 안심되고, 타인이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편이 훨씬 마음이 놓인다. 모든 행동은 구체적인 타인의 인정보다도 나 자신의 성에 차야 만족을 한다.


지금도, 그게 디폴트 상태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아, 물론 그게 디폴트 상태라는 것과, 그 디폴트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다른 처리장치를 가동하지 않는다는 건 좀 다른 의미라고 생각한다. 밖에서 볼 땐 비슷해보일지라도 .


여튼, 그렇기 때문에 “여자애” 이전에 “타인을 구하고 싶다”는 감성에 전혀 탈 수 없었던 것 뿐이다. 그러니까 “저런 형편좋은 여자애는 있을 수 없다”느니, “저런 애들이 뭐가 좋냐? 쟤네들은 백 퍼센트 귀찮거나 귀찮게 할 게 뻔해”라는 식의 말을 할 수 있었던 것 뿐이다. 나에게 타인은 불편하고 귀찮은 존재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내게 가장 와닿았던, 가장 가슴을 울렸던 대사는 오히려 이런 쪽이었다.


「관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신경쓰지 않아. 참견도 하지 않아. 너는, 정말로 그런 인간이고 싶은 거야. 사이좋은 그룹 안에도 들어가 있고, 쉬는 날엔 봉사활동도 참가하지만, 결국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자기 자신. 하모니 따윈 아무래도 좋아. 그러니까 책을 읽는 내 기행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 -- 이토 케이카쿠, <하모니> 中


나는 모두가 다 자기밖에 모르고, 귀찮게 굴고, 트롤러라고 하더라도 바로 그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팀을 이룰 수밖에 없고, 그렇게 협력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내 입장에서 ‘찾아낼 수 있었던’ 윤리라고 생각한다. 그 윤리에 깔린 전제는 결국 인간이란 전부 그런 존재들이란 얘기니까. 그런 존재들이라도 협력할 수 있고 연대할 수 있다면 그렇지 않은 존재들은 분명 더 잘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아마도 ‘구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분명 나보다 시작 지점에서 더 앞에 서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처럼 “그런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라는 말로 정리하진 않겠지.


물론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게 시작점이라고 해서 윤리나 타인을 포기할 필요는 없을 거다. 나는 그 자기 자신에게 집착했기 때문에 바로 그 자신이 실은 패치워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의 삶을 최대한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바로 (타인의 것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고, 뭣보다 그런 사람이 너 혼자만이 아니란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KEI: 뭐라고 해야할까요. 「같은 하늘 아래, 우리들은 혼자가 아니야!」 같은 메세지는 굉장히 싫지만, 「너도 혼자지만, 괜찮아. 나도 혼자니까」 같은 느낌 -- 보컬로이드P, 하야시케이의 인터뷰 中


그리고 지금 여기에 이 글을 적는 이유가 그 얘기들을 복잡하게 돌려말하기 위한 것이란 기분이 든다. 이런 것도 ‘구하고 싶다’는 마음일까.


덧글

  • Barde 2016/04/18 20:20 # 답글

    "구하고 싶다"는 마음에는 "남자인 내가 여자인 너보다는 우월하다"는 여성혐오가 내재되어 있죠. 정반대로 생각해 봤을 때 "여자가 남자를 구하는" 오토메 게임은 없으니까.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경향적으로) 여혐이라는 건 결국 살고 있는 세계(생활세계)가 좁은 것이고, 그래서 세상이라는 틀에 자신을 맞춘다는 의미에서는 앞서 있을지도 모르지만, 삶의 고귀함, 존엄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그들은 맨 뒤에 자리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 늅실러 2016/04/18 21:02 #

    그건 분명 여성혐오적이지만 어떤 의미에선 소년스러운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미숙하단 점에 결국은 포르노로 이어진다는 (나쁜) 점까지 포함해서.

    << 본문에서 나왔듯이 그렇다곤 생각하는데요. 분명 거기에는 어떤 연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연대란 의미에서는 좀 더 쉽게 한 발 내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그렇다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건 아니고요. 그런 건 우노 츠네히로가 잔뜩 얘기했고, 이 글 안에서도 은가이 돌려서 까고 있으니 말이죠.
  • Barde 2016/04/18 21:51 #

    네. 저는 '연대'로서도 구하고 싶다는 마음이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살고 있는 세계가 좁다"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제 트윗을 정독하셨다면 아마 알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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