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12 17:32

액션 게임의 시점에 대해 과대망상 에세이

시점이란 카메라의 비유를 들어서, 영화적인 의미를 들고 들어올 수 있겠다. 즉, 찍는 사람은 누구인가, 무엇에 대해서 찍을 수 있는가 없는가 등에 대한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게임의 경우에선 이 카메라를 조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즉 플레이어는 누구의 입장에 서있는가,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로 옮겨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2D에서의 시점. 2D 횡스크롤이나 종스크롤 등이 있으나, 처음부터 3D 공간을 지향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카메라의 비유는 사용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다만 횡스크롤의 경우, 리틀 빅 플래닛이나 퍼펫 티어의 경우(퍼펫 티어는 3D이긴 하지만 횡스크롤 시점이란 데서 동일하다), 이를 인형극으로 재해석한 적 있다.

먼저 1인칭 시점부터 말하자면, 아주 간단하게 캐릭터의 시점이다. 종종 컷씬 등에서 플레이어에 의지에 반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는 걸로 보아, 플레이어=캐릭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플레이어가 캐릭터의 시점을 빌린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 1인칭 시점은 종종 시야각이나 시야 높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데, 이를 통해 제한된 정보만이 제공되며 플레이어는 이를 통해 플레이를 해내야 한다.

3인칭 시점 중에는 과거에 자주 사용되었던 탑-뷰(Top-view)시점이 있다. 이는 말 그대로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조감법(Bird`s eye view)과 마찬가지로 신의 시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상태에서 들어오는 정보는 1인칭 시점보다 훨씬 방대하며, 캐릭터로서는 볼 수 없는 곳, 문 너머라던가 모퉁이 저편을 볼 수 있다. 플레이어는 말 그대로 '신'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러한 시점은 1인칭 군사 슈팅 게임에서도, 위성이나 무인항공기(=거의 필살기처럼 사용된다)에서도 차용되며, 마찬가지로 신의 시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3인칭 고정 시점의 경우에도 거의 비슷하나, 굳이 말하면 신의 대리인, 사도 정도 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탑뷰처럼 모든 것을 살펴볼 수는 없지만 필요한 정보는 전부 손에 들어오도록 조정되어 있다. 탑뷰도 고정 시점도 본래는 코스트의 문제로, 오브젝트 처리의 최적화를 위해서 채택된 것이란 사실을 붙여둔다. 따라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시점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지 않다. 카메라를 움직여, 보고 싶은 것을 볼 자유가 없다.



내가 가장 문제 삼고 싶은 것은 3인칭 시점 중에 자유 시점으로, 그 중에서는 바이오하자드 4 이후의 '숄더 뷰' 시점을 택한 것이 많다. 이 '숄더 뷰' 시점은 기본적으로 캐릭터 등 쪽에 붙어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위나 아래, 캐릭터의 얼굴 등도 볼 수 있다. 총을 드는 순간에는 이 시점에 좀 더 어깨 쪽으로 클로즈 업되며, 이 상태에서는 총구를 바라보는 데 집중되어 캐릭터의 얼굴은 볼 수 없다. 가장 편의성도 높고, 3D멀미라고 불리우는 증상이 적으며, 1인칭에선 보여주기 힘든 발차기와 같은 근접공격과 같은 액션도 보여줄 수 있다. 다만 탑뷰와 같이 모퉁이 너머나 문 너머까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여기서 내가 제기하고 싶은 문제의 초점은 다음과 같다.
비유하자면 다큐멘터리의 '카메라 맨'과 같은 이 시점은  대체 누구의 시점인가? 




여기서 나는 그것이 플레이어를 플레이어의 위치로 놓아두는 매우 정직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기본시점은 캐릭터의 등'이란 부분이야말로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관계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점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캐릭터보다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으나, 신 보다는 적은 정보를 갖고 있는 상태이다. 

플레이어는 캐릭터가 보듯이 세상을 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신처럼 전지전능하지도 않다. 플레이어가 캐릭터보다 조금 더 상위의 존재임은 이미 그가 캐릭터 자신이 볼 수 없는 등, 혹은 얼굴을 볼 수 있는데서도 알 수 있다. 플레이어는 캐릭터 등 뒤에 다가오는 적을 확인할 수도 있고, 때에 따라 가만히 캐릭터의 애니메이션을 관찰할 수도 있다. 이는 게임 플레이에서도 마찬가지로, 플레이어 중에는 일부러 캐릭터의 데드 씬 (죽을 때 재생되는 특수한 애니메이션) 을 전부 보는 이도 있다. 이 데드 씬은 보통 끔찍한 형태로, 말하자면 플레이어의 실수에 대한 '처벌'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걸 보는 것은 어느 정도 새디즘적, 관음증적인 성향도 동반하겠으나, 이는 다시 말해 게임의 모든 상황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게이머가 (캐릭터에 대한) 자신의 '전능성'을 확인하려는 행위이다. 여기서도 알 수 있지만, 캐릭터와 게이머의 방향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게이머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세계를 파악해 나가지만, 동시에 캐릭터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이를 테면 툼레이더와 같은 게임에서는 "빨리 친구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는 '메인 미션'이 제시되고, 서사도 긴장감 있게 흘러가지만, 정작 플레이어들은 새로운 능력을 얻거나 재미로 (만약 캐릭터라면 무시할 만한) 보물 상자를 찾거나 탐험, 동물 사냥 등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해서 플레이어가 신처럼 전지전능한 시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도 예시를 든 것처럼, 플레이어는 문 너머나, 모퉁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 수 없다. 이를 잘 이용한 것이 데몬즈 소울, 다크 소울 등의 게임으로, 이 게임에서는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오는 돌에 깔려서 죽는다거나, 문을 열었을 때 그 뒤에서 잠복하고 있던 적을 신경 쓰지 못하고 죽는다. 게임 플레이 적으로도 마찬가지로, 플레이어는 실수를 한다. 캐릭터의 능력이 충분히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만큼 구현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닌자 가이덴이란 액션 게임은 어렵기로 소문이 나있는데, 이에 대해 디렉터인 이타카키 토모노부는 "류야부사는 이미 슈퍼 닌자입니다. 그가 죽는다면 당신의 책임입니다. 분하면 실력을 키우세요"라고 코멘트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TPS 게임에서 캐릭터들은 각자의 '얼굴'과 '목소리'를 갖고 있다. FPS에서 '묵언' 캐릭터들(전혀 말을 하지 않는 캐릭터)이 많은 점을 고려해보면 이 차이는 분명히 크다. TPS 시점의 캐릭터는 캐릭터 나름의 사연이나 서사를 갖고 있고, 분명히 플레이어의 유도나 조작에 의해서 목적을 달성해 나가지만, 플레이어의 목적은 반드시 캐릭터의 목적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플레이어가 캐릭터 '등 뒤'에 바짝 붙어있으면서도, 완벽히 캐릭터와 같은 시점을 공유하지 않는 TPS의 시점은, 그대로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관계가 된다. TPS 시점에서,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세계를 체험하거나 게임을 즐겨가면서도, 결코 캐릭터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캐릭터와 함께 있더라도 캐릭터가 느끼는 고통의 정도, 캐릭터의 감정을 그대로는 느낄 수 없다. 그렇기에 캐릭터와 플레이어의 행동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가장 잘 반영된 것이 연타 QTE라고 할 수 있다. 연타 QTE에서 캐릭터는 위험에 빠지고, 캐릭터 자신만의 힘이나 육체로는 도무지 적을 이겨내거나 문을 열거나 할 수 없다. 캐릭터의 몸이 거부하는 상황을, 플레이어는 버튼 연타를 통해 억지로 플레이어가 원하는 방향 -- 게임오버으로 게임이 중단되지 않는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나가려고 한다. 이것이 과연 캐릭터에게 행복한 일, 혹은 올바른 일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게임은 때에 따라 배드 엔딩으로 향하기도 하고, 그것은 플레이어가 원해서 이뤄지는 일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캐릭터와 그 여정을 같이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나의 사건이 끝난 뒤, 플레이어와 캐릭터는 각자의 세계로 돌아간다.



"확실히 이번에, 네 스스로 무엇을 고르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이에 네가 생각한 것, 느낀 건 네 자신의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할지는 네 나름이다." (From MGS2, 스네이크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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