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23 22:23

Robotics ; Notes (2013)

*리뷰라기보단 감상에 가깝습니다.





"지금도, 로봇을 좋아하나요?"
-로보틱스 노츠 20 화 中



  로보틱스 노츠는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냐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긴박감을 유지해야하는 음모론을 택했는데도 불구하고 각본은 늘어지고, 개연성은 떨어집니다. 자폐적인 캐릭터의 감정선을 따라가기도 쉽지 않으며 오히려 짜증을 불러일으킵니다.  개그 역시 프라우 코지로가 등장할 때 외에는 크게 터지는 작품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이 작품을 좋아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어릴 적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라난 모두에게 전해주고 싶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어렸을 적 꿈을 향수로써 돌아보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꿈을 꾸자는 것도 아니라, 더 진지하게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보틱스 노츠는 두 가지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1. 멀지 않은, 2019년의 타네가시마. 타네가시마 중앙 고등학교 학생인 세노미야 아키호. 거대로봇 매니아인 그녀는 과거에는 화려한 영광을 얻었지만 지금은 폐부직전인 로봇부 소속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노미야 아키호는 자신의 언니가 만들던 거대로봇 제작 프로젝트를 잇기 위해서 고군분투합니다. 폐부되지 않기 위해서는, 로보-원에서 우승해서 실적을 따오라는 교감의 지시가 내려오고 세노미야 아키호는 로보-원 우승과 건배럴 제작 프로젝트를 도울 부원들을 모집합니다.

  2. 세노미야 아키호의 소꿉친구인 야시오 카이토는 킬배럴이라는 게임에서 전국 1등을 따는 것 외에는 관심 없는 학생입니다. 킬배럴이 잘 되는 장소를 찾아다니던 야시오 카이토는 기이한 소음을 듣게 되고, AR 어플리케이션인 '이루오' 안에서만 존재하는 AI인 아이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야시오 카이토는 아이리가 이끄는 데로 키미지마 레포트를 발견하고 그 안에는 '300인 위원회'라는 단체가 인류말살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음모론이 담겨 있는데.

  이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야기는, 맞물려가면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갑니다. 본래 이런 학원물적인 측면과 음모론을 엮는 것이 5bp, 아니 카오스 헤드와 슈타인즈 게이트를 포함하는 상정과학 어드벤쳐 시리즈의 특징이지요. 어쩌면 이것을 보고 슈타인즈 게이트처럼 개인 간의 관계와 세계를 잇는 세카이계네, 라고 판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로보틱스 노츠는 기존의 상정과학 어드벤쳐 시리즈와는 사뭇 다릅니다.

  이전까지의 상정과학 어드벤쳐 시리즈와는 달리 로보틱스 노츠는 2019년이라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가 합쳐진 통일된 플랫폼, '포켓컴'이 존재하고 이 포켓컴을 통해 증강현실(AR)을 이용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 '이루오'가 보급된 상태입니다. 또한 로봇공학 기술도 발전하여 많은 로봇들이 쓰이고 있으며, 외골격 또한 같이 발전을 이루어 장애인들이 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로보틱스 노츠의 기술들은, 모두 등장인물들의 꿈과 관련된 일입니다. 세노미야 아키호는 거대로봇, 건바렐을 완성시키는 것이 꿈이고 야시오 카이토가 꿈꾸는 킬 배럴 전국일등은 포켓컴 없이는 겨룰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노미야 아키호와 대립하는 히다카 스바루 역시 로봇에 대한 꿈을 갖고 있으며, 킬배럴을 만든 천재소녀 프라우 코지로 역시도 건바렐과 깊은 상관이 있습니다. 다이토쿠 쥰나의 꿈은 로봇 그 자체는 아니지만 그녀는 로봇이 꿈인 다른 인물과 깊은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들을 위협하는 음모들 역시 이 기술들이, 등장인물들의 꿈이 가장 나쁜 형태로 변형되어 등장한 모습이나 다름 없습니다. 자세한 것은 스포일러이기에 말하기 어렵지만, 로봇들은 사람들을 위협하게 되고, 사람들은 포켓컴때문에 혼란에 휩쌓이며, 건바렐은 정의의 로봇이 아니라 살인로봇의 상징이 되어버립니다.

  로보틱스 노츠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커다란 이야기가 끝났다고 하지만, 그것은 기술을 통해서 직접 우리의 자아, 우리의 꿈에 이미 체현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보틱스 노츠는 이것을 (슈타인즈 게이트 처럼) 서로가 서로를 생각해주는 동료의식이 있는 아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꿈 외에는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통해서  이야기 합니다. 로보틱스 노츠는 파편화된 개인이 어떻게 커다란 이야기에 의해 농락당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자 합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 아이들은 더 민감하게 자신의 꿈의 몰락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꿈이 언제든지, 얼마든지 타인의 손에 의해서 악몽이 되어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것은 스토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서도 계속해서 병치되고 있습니다. 걷는 것, 이라는 같은 테크놀러지임에도 불구하고 거대 로봇의 걸음걸이와 외골격의 걸음걸이가 동시에 병치되며 꿈, 가상 그 자체인 이루오의 AI인 아이리와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인 게지네, 이루오 AR을 통해 보이는 이미지들. 이것들이 동시에 우리 앞에 보여주며 어떻게 꿈이 타락할 수 있는지, 어떻게 꿈이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지 세계가 어떻게 이어져있는지 로보틱스 노츠는 단편적으로 정보를 제공합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역(逆)세카이계라고 생각합니다. 개인 간의 관계가 그대로 세계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오히려 테크놀러지를 통해 멋대로 개인의 관계에 들어오는 이야기라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보틱스 노츠는 슈타인즈 게이트보다 SF에 충실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보틱스 노츠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좋아했던 것에, 꿈꾸어 왔던 것에는 의미가 있다고, 아니 그런 악몽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바로 그 꿈을 멈추지 않고 꾸어야만 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로보틱스 노츠는 전형적인 전개입니다. 권선징악의 전개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끌어진 과정을 보면 그것은 꿈을 미화하고 있지만도 않고, 꿈을 멸시하고 있지만도 않고 그럼에도 꿈을 긍정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로보틱스 노츠는 확실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전형적인 전개의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러나, 저는 다시 한 번 묻고 싶습니다.

  지금도, 로봇을 좋아하십니까?
  지금도,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십니까?
  지금도, 꿈을 좋아하십니까?

  로보틱스 노츠는 이것을 힘차게 긍정합니다. 이것을 미화하지도 않고, 멸시하지도 않고, 이것이 얼마든지 제멋대로 변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긍정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로보틱스 노츠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로보틱스 노츠를 보고, 이야기하고, 다시 한 번 꿈꿔주시기 바랍니다.(2013/03/14)


  별점 ★★★☆

덧글

  • 제너럴마스터 2013/03/24 00:20 # 답글

    근데 원작에 비해 칼질한게 많아서 아쉽죠.

    노이타미나 22화가 아니라 26화, 하다못해 슈타게의 24화만 되도 빠진 내용을 어떻게든 넣을 수 있었는데 말이죠.
  • 늅실러 2013/03/24 01:23 #

    전 그냥 각색 그 자체를 문제로 봅니다. 노이타미나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각색이 이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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