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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로그 마이가든



마법소녀 사중주 : 유사마법소녀 묵시록 (1)

1. 유사 마법소녀의 등장.


  어떠한 장르든지 간에 세월이 지나고 숙성이되면 그 장르적 특성을 살린 고차원적인 시도를 하게 된다. 예를 들면, 블루스 음악의 댄스음악화였던 록 음악이 반항의 아이콘이 된 것처럼. 그리고 핑크 플로이드나 더 도어즈가 그랬던 것처럼 락의 본질은 잃지 않되, 복잡한 스타일에서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최근 다시 유행이 불고 있는 유사 마법소녀물도 바로 이런 위치에 있다. 단순히 낄낄 거릴 수 있는 패러디인 <대마법고개>, <팬티&스타킹 with 가터벨트>, <이것은 좀비입니까?>같은 것들도 있겠지만, 좀 더 그 장르의 본질을 지키면서 혹은 영리하게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 작품들을 주목해보고자 한다.

  이런 장르의 작품은  clamp의 <마법기사 레이어스>(1993.11 연재시작, 1995년도에 애니화)에서도 그 단편을 찾을 수 있듯, 충분히 긴 역사를 갖고 있으나 이러한 논의의 부족으로 자꾸만 0에서 다시 시작하는 경향이 보인다. 나는 이 글에서 이 장르에서 대표적인 네 작품, <프린세스 츄츄>,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정의소녀환상>,<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를 주축으로 이들의 구조, 공통점과 차이점, 그에 따라 나타나는 각자의 주제와 이에 대한 평가를 하고, 이 장르에 도전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도움이 되어보고자 한다.




2. 마법소녀 = 무당


  유사 마법소녀물에 대해 논하기 전에 앞서, 그들의 커버스토리로 사용하고 있는 전형적인 마법소녀물이 어떤 것인가 알아보고자 한다. 이를 자세히 파고들면 너무 길어지게 되니, 거칠게 그 요약만 해보고 끝내겠다.

   나는 마법소녀는 무당을 애니메화 시킨 캐릭터라고 주장한다. 이전 '심리괴수물'에서 언급한 바 있으나, 좀 더 자세히 들어가 보자. 단순히 무당하면 예언자나 초능력자를 포함한 개념을 생각할 수 있으나 여기서 무당은 '굿을 하여 잡귀를 쫓을 수 있는 사람'으로 지칭하도록 하겠다.

   먼지 이 '잡귀를 쫓는 것'이 무엇인가에 주목해보자. '잡귀'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의 구체적인 이미지화 (표상)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실제적인 재난과 병리의 근원이기도 하고, 욕망이나 절망같은 인간 정신문제의 근원이기도 하다. 무당은 그 근원을 밝혀낼 뿐만 아니라 그 근원을 물리쳐 사람들로 하여금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봉사한다. 마법소녀의 초기역할은 단순히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었으나, 차츰 이런 잡귀를 쫓는 위치로 정착한다. 이것을 달리 보면, 초기의 마법소녀가 욕구불만 상태의 해소를 위해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면, 후기로 갈 수록 그 욕구 불만 상태를 일으키는 근원(무의식 중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셈이다.

  그러나 '이 잡귀를 쫓는 것'만으로는 무당이라 할 수 없다. 무당이 하는 일이 '잡귀를 쫓는 것'이라면 '굿'을 할 수 있어야 무당의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무당은 자신들이 모시는 신, 초월적 권리를 자신의 몸에 내리고 잡귀를 쫓는데 임한다. 무당들은 신과 인간의 매개체로써, 그들을 불러내리기 위해 춤을 추고 노래하는. 지극히 축제적인 행위를 한다. 보통의 퇴마물과 다르게 마법소녀물의 소녀들은 '변신'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어른'으로 변하는 것으로 표현한 초기의 마법소녀물은 이런 초월적 권리에는 더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매개체'라는 부분을 간과했다고 본다. 마법소녀물에서 '사복을 입은 소녀'에서 '제복을 입은 마법소녀'가 되는 과정은 바로 초월적 권리를 자신에 몸에 입고, 인간과 초월 세계의 소통을 하는 '매개체'가 되는 과정이다. 동시에 그녀들이 행하는 '변신'과정은 마치 춤처럼 정해진 동작을 통해, 아름답게 묘사되는 엔터테인먼트 즉 축제와 같다.

  무당은 어떻게 무당이 되는가? 춤과 노래를 배워서 잇는 세습무도 있는 반면, 직접 신이 들려서 무당이 되는 강신무의 경우도 있다. 강신무의 경우, 그것은 신으로부터 선택받음, 즉 세계로부터 선택받았음을 의미한다. 대개의 마법소녀가 대대로 마법소녀가 된 가문이기에 그렇게 되었다기보다는, 덜컥 마스코트 동물에게 그 재능이 발견되어 마법소녀가 되었다. 즉 '세계로부터 선택된' 강신무인 셈이다.




3. 커버스토리 = 보석 이야기



  3.1 본격적으로 유사마법소녀물들에 대해 논해보도록 하자. 내가 그녀들을 유사 마법소녀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보다 그녀들의 커버스토리가 마법소녀물(무당!)의 공식적인 법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얕은 지식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무당과는 상관시킬 수 없는 마법소녀물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마법소녀들이 잡귀를 쫓은 보수로 보석을 얻는다는 점이다. 자, 오래 기다렸다. 이 보석 이야기와 2.에서 언급한 마법소녀 = 무당론을 가지고 네 작품의 커버스토리를 비교분석해보도록 하자.


....는 다음편부터. 
적절하게 끊었다기 보다는 네 개를 한 꺼번에 하는 과정이 너무 귀찮았음. 
아마 내일쯤 올리고 모래 연재가 끝날듯요.

Un-Go : 소설적 진실의 탄생

  Un-Go의 세계는 그야말로 애니메이션한 세계입니다. Un-Go의 원작인 패전탐정 시리즈의 경우에는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반면, Un-Go는 이 패전탐정 시리즈를 바탕으로 SF로 재구축한, 말하자면 픽셔널한 픽션입니다.

  2001년 이후 Un-Go에서는 대대적인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일본의 자위군도 참여합니다. 주인공인 신쥬로도 여기에 참여했었죠. 전쟁이 흐지부지하게 끝나고 (패하고?) 일본은 신정보통신확산법이라는 강력한 정보통제를 통해 재도약하고자 합니다. 이런 픽셔널한 세계에서 진실을 찾아헤메는 탐정, 신쥬로와 그의 조수 인과 그리고 카자모리라는 소녀로 구성된 일당들의 사건을 그리는 게 Un-Go의 메인 스토리입니다. 아, 그 뒤에는 정보산업의 최고봉인 사장이자 진실을 덮고자 하는 카이쇼 린로쿠라는 친구도 있고요. 이런 재구성이 심하게 이상한 위화감을 유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것보다는 시대를 초월한 본질적인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로 변했고 현대의 우화(알레고리)로 읽히기도 합니다.

  Un-Go는 퍼즐 미스테로리서는 솔직히 훌륭한 편이 아닙니다. '범인'을 찾는 이야기라기에는 이미 "한 사람에게서 확실하게 하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끌어내는" 인과라는 초월족 존재에 의해 cheat적인 전개가 가능해지죠. 이건 카자모리라는 로리소녀 친구가 너무 편리한 도구란 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Un-Go는 훌륭한 탐정물입니다.

  탐정이란 무엇일까요? 숨겨져 있는 사실을 밝혀내는 일, 혹은 그런 일을 하는 직업을 뜻한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진실의 수탐자라고 해도 좋겠지요. 진실이 아름다우며 누구에게나 이득이 되면 좋겠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죠. 바로 여기서 Un-Go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Un-Go에서 신쥬로가 들쑤시고 다니는 진실은 편익과 타협하지 않은 "불편한" 진실들입니다. 그것이 밝혀지면 피해를 볼 사람들이 훨씬 많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쥬로는 그것을 찾아서 보여줍니다. 종종 신쥬로 자신의 픽션과 진실을 헷갈리기도 하지만, 인과와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결국엔 진상에 도달합니다. 그의 말버릇처럼 "인간은 향락과 사치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만큼 진실을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것들은 대부분 전쟁동안 일아난 상처들과 전후에 재도약하려는 Un-Go세계의 일본과 관계있기도 하지요. 신쥬로가 발견한 픽셔널한 픽션 속의 진실은, 소설적 진실이 되어 다시 우리 현실에 적용할 수 있게 됩니다. 너무 길어지면 이야기가 튀기 때문에 하지 않겠지만, 이 작품이 여러번 논라에 빠진 바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Un-Go가 소설적 진실을 이미 획득했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봅니다.

  이 작품과 비교될 만한 것이 하느님의 메모장인데, 하느님의 메모장은 퍼즐 미스테리로서는 훌륭할지언정, 탐정물이 아닙니다. 사자의 대변자, 생자를 위로하는 것  - 부정(잡귀?)을 쫓아내는 것은 탐정이 아니라 무당입니다. 탐정은 말했듯, 진실의 수탐자입니다. 설령 진실로 인해 그 문제가 더 커질지언정, 그 진실을 들춰내는데 그 역할이 있는 셈이지요.

  SF로서는 꽤나 재밌는 구석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1940년대 이후 전후를 그린 작품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기에, 그런 40년대 이후의 냄새가 여기저기서 나는데도 태연하게 프리돌이라는 가상 아이돌, AI나 마이크로 웨이브, 태양열 발전, 무엇보다 정보통제 사회를 이끌어와 픽셔널한 세계의 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꽤나 재밌습니다. 이 미묘한 충돌이 Un-Go만의 맛이기도 하지요. 어찌되었거나 퍼즐 미스테리로서는 가끔씩 부족한 면이 보이고  대사 라이팅이 지나치게 연극적이고 같은 대사를 남발해서 너무 폼잡는듯한 모습이 좀 아쉬운 점이긴 합니다만 충분히 괜찮은 작품입니다..

별점 : 

* 몇몇 요소를 보고 우익적이라고 하는 작자들이 있었습니다만, 우익적 소재를 데려다 놓고 신나게 까고 앉아있는 작품을 두고 우익적으로 말하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나의 오타쿠론 넷실러 백과

  이 글을 쓰기 저에 오덕후, 혹은 덕후와 오타쿠를 확실히 나눌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오덕후, 혹은 덕후는 오타쿠에서 파생해 더 큰 의미를 확보한 단어로, 모든 형태의 마니아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라고 봅니다. 컴덕후니, 공부덕후니, 와인덕후니 심지어는 남친덕후라는 말까지 쓰는 마당에 이미 어떤 특정한 부류를 지칭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마니아에도 정신병적이란 의미가 있으며, 이런 덕후의 탄생 뒤에는 한국에서 유희에 대한 적대적 태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시각 등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일단 이건 제쳐두도록 합시다.

  그렇다면 도대체 오타쿠란 뭘까요? 일본에서도 메가네 오타(안경 오덕후)니 하는 식으로 오타쿠의 파형이 쓰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오타쿠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한 모든 서브컬쳐 - 만화,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 걸 게임, 비디오 게임, 피규어, 드라마 CD 등 - 를 광적으로 즐기는 이들을 일컫습니다. 애초에 오타쿠란 말 자체가 애니메이션 팬층에서 서로를 지칭하는 은어였고, 오오츠카 에이지가 프로듀스하던 만화잡지의 칼럼에서 인용되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엽기 살인사건인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에서 사회의 표면으로 떠오른 점을 볼 때, 오타쿠가 일반적인 마니아나 장인의 의미라는 주장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오타쿠를 알기 위해서는 오타쿠 컬쳐의 본질적인 측면을 알아야 합니다. 이 계열에서 카리스마적인 비평가인 아즈마 히로키는 오타쿠 모에 컬쳐를 두고 데이터베이스 서사 소비라고 칭했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아, 데이터베이스 서사 소비에 대해서는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 모던>을 참조해주세요. 어쨌거나, 제 생각에 그것은 밀레니엄 이후 혹은 에반게리온 이후의 3세대 오타쿠들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상당히 현대화가 진행된 후의 오타쿠들에 대한 분석입니다. 오타쿠의 전세대를 걸치는 오타쿠 컬쳐의 본질에 대해 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타쿠 컬쳐의 본질은, 매스미디어의 출현 후 가속화된 '모방의 모방'의 극단적 형태입니다. 이것 역시 포스트 모던이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기존의 예술이 현실을 배낀 1차적 모방이었다면, 현실의 오브젝트를 그저 선택함으로써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뒤샹의 <샘>이후로 현실을 편집, 수정, 재구성하거나 1차 모방을 거친 예술을 재 모방한 2차 예술 등이 현대 예술의 이름을 달고 나오게 됩니다. 워홀의 깡통 그림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우실 겁니다. 워홀을 모르신다면 삼성과 관련되어 화제가 된 뭐시기 슈타인씨의 여인의 눈물도 좋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정형화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나요? 눈은 크고, 코는 거의 없고 턱은 각진 소위 '모에모에'한 그림체말입니다. 오타쿠들이야 그것들을 세세하게 구분할 수 있겠지만 공통된 어떤 스타일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을 겁니다. 말하자면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인간을 모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란 겁니다. 그건 오타쿠 그림체라는 새로운 스타일 = '새로운 질서' (= 새로운 이데아?)의 모방, 재현 혹은 그 자체입니다. 아즈마 히로키와 겹치는 걸 피하기 위해, 이걸 모에 그림체가 아닌 일본 로봇물에 적용시켜 보죠.

  오시이 마모루가 최근 지적한 것처럼, 일본의 애니메이션에서 로봇은 그것에 대한 기본적인 사상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로봇은, 3d 노동을 포함한 전쟁/전투 및 서비스업까지 포함하는 노동을 대리 수행하는 기계가 '아니'랍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하는 로봇은 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안드로노이드거나 인간 신체의 연장인 파워드 슈츠, 사이보그의 개념에 가까워요. 다시 말해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것은 로봇이란 기계를 모방한 게 아니라, 인간을 모방한 인형을 모방한 '새로운 무언가'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퍼스트 건담이라 불리우는 모든 건담의 원형인 Rx-78-2, 이건 어딜 봐도 사이버네틱하게 리믹스한 (모방한?) 사무라이 갑옷이예요. 건담은 전쟁을 대리 수행하는 기계가 '아니'예요. 건담은 인간의 '강화된 신체'이며 동시에 '강화된 인간'의 신체입니다. 마치 배트맨이란 페르소나가 브루스웨인의 본질을 침범하듯이, 건담은 주인공들의 또다른 자아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건담 더블오에서는 주인공의 말버릇이 대놓고 "내가 건담이다"일까요.

  이것은 만화가 탄생할 때부터 품고 있던, 기호적/ 인식론적 속성이기도 해요. 일본 오타쿠 컬쳐권이 아닌, DC코믹스나 마블 코믹스 등의 미국 코믹스, 특히나 왓치맨이나 킥애스등의 유사히어로물(혹은 메타히어로물?)에서도 이런 '모방의 모방'= '새로운 질서'의 경향을 볼 수 있답니다. 방금 언급한 배트맨의 고민이 대표적이죠. 일본 오타쿠 컬쳐만큼 심하지는 않다고 보지만요.

  말이 샜는데 어쨌거나, 오타쿠가 좋아하는 것의 본질은 '모방의 모방' = '새로운 질서'라는 얘깁니다. 그것은 뭐에 대한 새로운 질 서 일까요? 현실에 대한 새로운 질서입니다. 오타쿠는 현실과 거짓을 착각하는 게 '아니'랍니다. 그들이(내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 넓게 보면 리얼 버라이어티 쇼나 아이돌 문화와 같은 현실과 거짓이 섞인 것이 '아닌' 거짓, 역설적으로 '참된 거짓'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설적 진실'이 되어 다시 멀리 돌아와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러면 너무 튀니 제쳐둡시다.

  길게 돌아왔지만 결론은 짧습니다. 오타쿠의 기준은 어디까지 거짓을 사랑할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그들은 '참된 거짓'의 애인이기 때문입니다.

팬티 & 스타킹 with 가터벨트 : 진심으로 장난치고 있는거야

  이 작품은, 말하자면 이마이시라는 애니메이션 감독에게 최적화된 영상입니다. 무슨소리인고 하니, 등장하는 캐릭터도 스토리도 전부 이마이시 감독이 만들어서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 영상의 장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천사랍시곤 막장년들이 검과 총을 들과 날뛰고, 흑인 목사가 나오고, 애완동물 같은 캐릭터가 슬랩스틱 개그를치고, 미국식 화장실 농담이 난무하는 가운데 오물로된 악마의 하수인인 고스트들이 폭파되는 바로 그게 해 - 보고 싶었을 뿐이란 애기지요. 게다가 그렌라간때는 어느정도나마 신경을 섰던 흥행성도 이번엔 그냥 쓰레기통으로 집어 치워버렸습니다. 오로지 하고 싶은 것만을 했기에, 영상은 훨씬 자유로운 느낌입니다.

  예를 들면, 1화 b 파트의 데스레이스 2010같은 경우는 정말로 어마무지한 스피드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 애니메이션이 경도되어있는 아름다운 정지화면 따위는 무시하고, 굉장히 동적이라는 느낌을 주기위해 화면을 몇개의 선으로 치환해버리는 대담무쌍한 짓을 해버리죠. 5화 b파트 보밋포인트는 대놓고 콘사토시의 패러디고, 6화 악마같은 여자들은 액션씬에 주력하여 3d 효과의 힘을 맘껏 누린 케이스입니다. 심지어 11화 에피소드인 낫씽투 룸 같은 경우에는 앵글 시점을 방에 고정시킨채, 팬티와 스타킹이 따분한 오후를 심심풀이 농담이나 하면서 보내는 롱테이크를 보여줍니다. 13화의 실사, CG, 일본식 그림체와 미국식 그림체를 오가는 클라이막스는 그야말로 장대합니다. 다른 모든 걸 빼고 영상의 맛이라는 점에만 초점을 맞추면, 팬티 & 스타킹 with 가터벨트는 최고입니다.

  재밌게도 이 작품은 그 그림체처럼 기반이 오타쿠문화라기보다는, B급할리우드 영화에 가깝습니다. 가면라이더나 루팡 3세가 인용되는 몇몇 부분이나, 특촬물마냥 실사로 된 찰흙이 폭발하는 장면을 빼면 일본식 농담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미국식 B급 영화에서 인용한 것이지이요. 도대체 로메로와 카펜터 시티라는 (존 로메로는 좀비물, 존 카펜터는 B급 영화계의 거장입니다.) 패러디를 오타쿠 중 몇이나 알아들었는지 싶더군요. 통째로 mtv와 락문화에 대한 패러디인 10화 c 파트는 그쪽 지식이 없으면 즐기기 어려울 정도구요. 이 작품은 오타쿠가 미국식으로 만들어 본 게 아니라 반대로 일본문화에 흠뻑빠진 nerd가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보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면, 저 유명한 변신씬 조차 제게는 미국 애들이 본 일본 애니메이션이란 느낌이었고요. 애초에 스타일이 우선시되는 애니메이션이기에, 이 스타일을 따라올 수 없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게 됩니다.

  이 작품을 보면 나오는 반응은 둘 중 하나입니다. "이런 미친 새끼들 ㅉㅉ..." "이런ㅋㅋㅋㅋ미친ㅋㅋㅋㅋ 새끼들ㅋㅋㅋㅋㅋㅋ" 이 작품이 애초에 하고 있는 것이, 13화의 대사처럼 "진심으로 장난질"을 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장난질에 어울려 신나게 놀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 작품을 재밌게 볼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갈리는 것이겠지요.


별점 : ★★☆

아이돌 마스터 (iDOLM@STER, 2011)

  <아이돌 마스터>는 일단, 반다이 남코에서 만든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몇 명의 아이돌을 선택, 육성한다는 내용인데요, 프린세스 메이커같은 시뮬레이션 요소와 리듬게임적인 요소 그리고 약간은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같은 느낌도 어느 정도 있는 오타쿠에게 먹힐만한 게임이지요. 저는 <아이돌 마스터 2>의 체험판밖에 해보질 않아서 게임성 자체는 잘모르겠지만 꽤나 괜찮다는 평이 많더군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아이돌 마스터>를 지칭할 때는 이 게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마치 <스타워즈>가 그렇듯이 그 작품이 끼고 있는 여러 미디어 믹스와 상품들까지 의미하고 있지요. 이건 반다이 남코의 적극적인 마케팅전략때문이기도 하고 2차창작이라는 특이한 시장이 발달한 일본 오타쿠계의 영향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아이돌 마스터는 니코니코동화라는 동영상 포털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발달했지요. 즉 <아이돌 마스터>는 하나의 장르나 문화라고 보는 게 좋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화에 접근하기에는 너무 허들이 높지요.

  애니메이션 <아이돌 마스터>가 지향하는 재현점은, 게임 <아이돌 마스터>가 아닙니다. 기본적인 설정은 아이돌 마스터 2 게임의 그것을 빌려왔지만 실제로 애니메이션 <아이돌 마스터>가 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아이돌 마스터 장르의 재현이며 재구성입니다. 동시에 아이돌 마스터 팬들만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신규팬들도 충분히 재밌게 즐길만한 작품을 만들고자 한 것이지요. 어떤 의미에선 애니메이션 <아이돌 마스터>는 아이돌 마스터 문화의 카탈로그이기도 합니다.

  애니메이션 <아이돌 마스터>의 설정은 이렇습니다. 765 사무소라는 약소 프로덕션 사무소에 13명의 아이돌이 데뷔한 지 반년이 되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습니다. 1화에서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프로듀서가 오게 되고 아이들은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나갑니다. 여러모로 1쿨과 2쿨이 크게 나뉘는데요, 무명에 가까운 1쿨과 정말로 많이 유명해진 2쿨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후반부에선 아이돌들의 관계도 조금씩 엇나가기도 하고요. 다만, 아이돌 마스터가 하고자 하는 것은 진지하게 아이돌이란 직업은 무엇인가라기보단 아이돌, 혹은 캐릭터들을 보고 즐기는 감각(네, 모에모에 큥입니다.)에 가깝기 때문에 현실적이거나 다크한 내용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걸 보고 싶다면 차라리 <퍼펙트 블루> 한 편을 보는 게 훨씬 유익할 겁니다.

  진부한 이야기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감동적인 편이라고 칭찬하는 20화 치하야편이라던가, 24화의 아마미 하루카의 이야기는 그렇게까지 현실적이지도 신선하지도 깊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만든 애니메이션이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진부함을 불편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유연하고 잘 다루고 있는 것이 대단합니다. 장편 에피소드에서는 템포를 아주 잘 조절해서 공략해나가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단편 에피소드에서는 디테일을 잘 잡아내는 방향으로 특화되어 있단 느낌입니다. 특히나 13명이나 되는 아이돌들의 개성을 1인칭 다큐멘터리라는 수법을 이용해서, 1화 내에서 한 번에 다 잡는 건 아주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저는 아이돌 한 명에 집중한 누구누구 에피소드보다는 아이돌들이 전부 다 출연하는 군상극적인 에피소드, 예를 들면 예능 올림픽같은 걸 재밌게 봤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작품은 잘 해내고 있고 누구누구 에피소드에서도 다른 아이돌들이 사라지지 않고 잘 받쳐주고 있지요. 

  아이돌 마스터 내의 여러 곡을 리믹스해서 ost로 사용하고 있고, 아이돌들의 이야기인만큼 노래가 자주 등장합니다. 기존에 있던 노래라는 점에서 구 팬들에게 어필하기도 하고 그 사용이 꽤 절묘하단 점에서 신규 팬에게 어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한 마치 물랑루즈처럼 아이돌들이 노래와 춤추는 모습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이고,  다수의 아이돌이 한 꺼번에 등장하는 씬은 그야말로 엄청난 박력이기도 합니다. 다만 가끔 3d로 연출한듯한 장면이 눈에 지나치게 뜨이긴 합니다. 못만들었다기보다는 위화감이 느껴진다고 표현하는게 좋겠군요. 차라리 무대에 올라갔을 때는 전부 3d로 처리하거나 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게 타협안으로 가장 좋았겠지요.

  아이돌 마스터 문화를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저런 잡다한 요소가 등장하지만 이걸로 인해서 이야기가 난잡해지기보다는 흥미를 유발하는 정도에서 그칩니다. 예를 들면 뿌띠마스라고 불리는 아이돌마스터의 캐릭터들을 sd화하고 애완동물처럼 그린 작품에서 나온 캐릭터들이 핸드폰 스트랩으로 등장하고, 15화에선 흑역사라고 불리는 <아이돌 마스터 제노그라시아>를 연상케하는 로봇씬이 등장하기도 하며 거기에 메카 치하야라고 불리는 니코니코동화에서 나왔던 개그요소가 적극적으로 사용됩니다. 심지어 유팩이라고 불리는 아이돌 마스터  라디오에서 나왔던 장면도 재현되었지요.

  작품 자체도 모에물로서 잘 만들어진 편이지만 저한테는 이런 면들이 아주 재밌었습니다. 폼잡고 제대로 끝내지도 못한 <동쪽의 에덴>보다 이 쪽이 훨씬 디지털 정보유통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쌍방향 소통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작품으로써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쪽의 에덴>이 나오게 된 기획이 "니코니코동화나 보컬로이드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라는 의도에서 나왔다는데, 오히려 프로덕션 ig가 이런 식으로 만들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나왔을 겁니다. 그 따위 패트레이버 2 the movie의 재탕같은 것보단 차라리 이쪽이 훨씬 낫다고 봅니다.

  아이돌 마스터에 새롭게 접근하는 사람들도, 기존의 아이돌 마스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모두가 즐길만한 이야기지요.메시지가 크게 담기지는 않았지만, 그런것과 상관없이 엔터테인먼트로써 굉장히 훌륭한 작품입니다. 꼭 모든 대중문화 작품에 메시지를 요구할 필요는 없지요. 아이돌 마스터는 그 엔터테인먼트성과 완성성으로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작품입니다.(12/01/07)



별점
***




*아이돌 마스터 제노그라시아는 나가이 타츠유키 감독의 첫 감독 작품인데, 망했지요. 어떤 의미에선 이 작품으로 첫 감독직을 잡는 니시고리 아츠시와는 비교가 되는 모습입니다. 사실 그래요, 아이돌 마스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이돌 마스터 감독을 맡겨야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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